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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AR140

정말로 강하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Preached: 17 Apr 94 ▪ Edited: 8 Feb 06


사람들은 힘과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개개인이 그렇게 하고 있고 집단들과 국가들도 그렇게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역사가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권력과 권력 투쟁, 군사력과 경제력 등을 핵심적인 주제로 다루고 있는 책들과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주로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한 회사의 최고 경영자나 군대의 사령관처럼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과 부자들이다.

힘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간교하고 약삭빠르고 파렴치하고 거만한 사람들을 찾아내기는 그리 힘들지 않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기 위해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고 자신의 욕망과 야망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압박을 가한다. 그들은 눈도 깜박하지 않고 끔찍한 일을 스스럼없이 행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특히 노인들과 부녀자들과 어린아이들이 그들에게 희생을 당해왔다.

신자들 중에는 성공이라는 말이나 야망이라는 말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강하고 힘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거북해하는 편이다. 이해할 만한 일이다. 왜냐하면 성공, 야망, 권력 등의 개념에는 종종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을 근거로 바라볼 때 정말로 강하고 힘이 있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전혀 아니다. 따라서 이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성경은 우리가 강하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여호수아 1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명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도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 6:10)라고 권면했다. 또 고린도 교인들에게 쓴 편지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고 말했다.

힘과 능력은 실제로 하나님 나라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한 요소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기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신다. 특히 마지막 때에 우리가 그렇게 되길 원하신다. 그리고 이기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 우리는 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복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잘 살아가면서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주제를 잘 이해하고 성경이 말하는 대로 힘과 능력을 갖춘 정말로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예수님께서 사신 삶을 살펴보면서 이 주제를 생각해보기로 하자.

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이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실로 전능하신 창조자이시다.

복음서에서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능력을 드러내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다. 병든 사람을 고치셨고 죽은 사람을 살리셨다. 폭풍우를 가라앉게 하시고 거친 파도를 잠잠케 하시며 자연을 다스리는 능력을 발휘하셨다. 또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귀신을 물리치는 능력을 행사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세계를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지으셨으며 이 마지막 때에 그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히브리서 1:2절은 진술하고 있다. 그리고 3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 구절은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그대로 드러내는 광채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형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아들이 말씀의 능력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놀라운 능력이 있음은 아주 명백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연약해 보이셨다

예수님에게는 분명 힘과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서에 기록된 여러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그리 강해 보이지 않으셨다. 사실상 약해 보이셨고 권세를 부리는 사람들 앞에서는 때로 무력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땅에서 사시는 동안 예수님은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으셨다. 그러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보복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약한 것처럼 보였다.

십자가 사건은 이 사실을 극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은 조롱을 당하셨고 뺨을 맞으셨고 채찍질을 당하셨다. 예수님에게 침을 뱉는 사람들도 있었다. 힘과 능력을 보여주어야 했을 바로 그 때에 예수님은 약해 보이셨고 자신을 방어하실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에는 마치 범죄자처럼 십자가에 달려 가장 괴롭고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죽음을 맞이하셨다.

그 당시 일어났던 일들을 확인해보기 위해 성경을 살펴보기로 하자.

마가복음 14:55절에 따르면 산헤드린이라 불리기도 했고 유대인들의 대법원이라 할 수 있는 유대인들의 공회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는 예수님을 처형하기 위한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 써보았지만 아무런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예수님에게 침을 뱉는 사람도 있었고 예수님의 눈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선지자 노릇을 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관리들도 손바닥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내리쳤다(막 14:65).

그 후 공회는 예수님을 결박하여 빌라도 앞으로 끌고 갔다. 빌라도는 이 사건이 헤롯의 관할권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예수님을 헤롯에게로 보냈다.

누가복음 23:8-11
8 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9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10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발하더라
11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예수님은 또 다시 모욕을 당하셨다. 헤롯과 그의 군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화려한 옷을 입혀 다시 빌라도에게 보냈다.

그 때는 유월절이었고 사람들은 빌라도에게 죄수들 중 한 사람을 사면해 풀어줄 것을 요청했는데 그것은 유월절 절기에는 통상적으로 늘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려 했다. 예수님에게 죄가 없으며 대제사장들이 그들의 시기심 때문에 예수님을 고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군중들을 선동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빌라도에게 요청하게 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마가복음 15:8-15
8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그러자 로마 군대가 예수님을 넘겨받아 마치 경배하는 것처럼 시늉하며 조롱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끌고 갔다.

마가복음 15:16-20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의 야유와 조롱은 계속되었다.

마가복음 15:24-32
24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26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게 될 때까지 일어난 이 사건들을 보여주는 성경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은 유대인 지도자들의 결의와 군중들의 요구와 로마 당국의 결정대로 속수무책 당하기만 하는 약하고 한없이 무력한 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기 수 세기 전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어떤 수난을 당하게 될지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이사야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선지자는 괴롭힘을 당하고 짓눌려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잠잠히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같은 주님을 예언했다.

이런 모습은 힘과 권력이 있는 위대한 사람과는 일반적으로 잘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다. 오히려 힘이 없고 무력한 사람의 모습처럼 보인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자취를 따르고 예수님의 마음과 삶의 자세와 방식을 본받으라고 말한다(베드로전서 2:21-25)

우리가 이런 괴롭힘과 모욕을 당하게 되면 불쾌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또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강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면 우리는 약하고 무력한 사람처럼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그 부당한 대우에 맞서 우리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려 한다. 우리에게 부당하게 가해지는 처사에 우리는 분개한다. 중국 삼국지의 배경이 된 “삼국시대(Three Kingdoms)”당시 무사로 이름을 떨쳤던 조조는 “나는 세상을 저버릴 수 있지만 세상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부당하게 대하면서 그것을 강하고 힘이 있는 사람의 특권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타락한 세상에서는 거만하고 자만에 차 있고 공격적인 특성들이 현저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정말로 강하다는 것은 어떤 것이며 또 약하다는 것은 실제로 어떤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타락한 세상의 세속적인 관점과는 매우 다른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온유와 겸손이라는 진정한 힘

예수님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종종 연약함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는 겸손과 온유이다.

마태복음 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29절에 “온유”라고 번역된 단어는 마태복음 5:5절에서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온순하신 분이다.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시는 분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내게 배우라.” 그러므로 우리는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한다. 온유와 겸손은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속성이며 우리 삶 속에서 우리가 배양해야 하는 자질이다.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힘

하나님 나라에 속한 진정한 힘은 성품이나 자질 뿐 아니라 신념이나 확신과도 관계가 있다. 정말로 강한 사람은 진리를 따르기로 한 결정에 흔들림 없이 헌신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진리의 길을 고수한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에 순종하면서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제로 실천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정말로 강한 사람은 옳은 길을 쉽게 단념하지 않는다.

진정한 힘과 능력을 이런 방식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연약한 것처럼 보일 때에도 진정한 힘을 드러내셨던 강한 예수님을 볼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은 무력하게 보였던 모든 상황에서, 특히 십자가를 지게 되기까지의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진정한 힘을 드러내 보이셨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 마음대로 예수님에게 행하도록 예수님이 언제나 허락하셨던 것은 아니다. 누가복음 4:20-30절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도성에서 쫓아내고자 했을 때는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셨지만 예수님을 벼랑 아래로 던지려고 했을 때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이 퍼붓는 조롱과 모욕을 참아내며 십자가에 달리시는 극한 고통과 고뇌를 마다하지 않고 견뎌내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진리를 따르는 길이며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신 뜻을 이루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시는 동안 내내 이 자세를 유지하셨다. 늘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고자 하셨다. 그래서 십자가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견디셨다.

예수님은 수난을 당하며 즐거워하지 않으셨다. 또 고난을 쉽게 여기지도 않으셨다. 사실상 예수님에게 십자가의 고난은 극히 고통스럽고 참혹한 일이었다. 마태복음 26:36-39절은 예수님이 얼마나 깊이 고뇌하고 슬퍼하셨는지를 어렴풋이나마 보여주고 있다.

마태복음 26:36-39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은 번민하며 고민하셨고 심히 괴로워하셨다. 곧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될 상황을 맞이한 예수님은 그 죽음의 고통이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얼마나 크고 극심할지 잘 알고 계셨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비통함으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라고 부르짖었던 예수님의 외침이 그 증거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세상 죄를 지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 사탄과 어둠의 세력이 예수님을 심히 괴롭혔다.

하나님의 아들이 극한 고뇌 속에서 그렇게 외치셨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은 하나가 될 수 있는 깊은 교제를 지속적으로 영원히 누리셨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시면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완전한 결속과 하나 됨이 깨지는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었다<1>.

39절에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그러나 이어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 십자가라는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 고난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적인 영역에서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를 지닌 고난이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 나라의 토대가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했다. 어둠의 세력과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의 길과 인류 구원의 길을 제공했고 우리의 성품과 삶이 변화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우리도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어떤 고난도 감수한다면 그 고난은 결코 헛된 일로 끝나지 않게 될 것이다.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는 용기와 강인함이 있어야 한다. 영적인 힘과 끈기가 있어야 한다. 연약한 상태로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없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삶은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온다.

1.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방식을 충실히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런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연약해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동요할 필요는 없다. 오직 하나님께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데 집중하기만 하면 된다.

2.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삶은 영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삶을 우리가 살아간다면 비록 부당한 고난을 당한다 해도 그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이 될 것이다. 그 고난은 우리가 성숙한 사람으로 커 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값지게 보시는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벧전 3:4)과 같은 소중하고 순수한 자질들이 우리 속에서 자라게 될 것이다.

야고보서 1:2-4 절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고난과 고초를 겪게 될 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야고보서 1:2-4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을 의지하며 힘든 상황을 잘 감당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며 우리는 영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 잘 알아가면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깊어지고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3.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가? 먼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게 된다. 그렇게 할 때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둘째,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다 행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데 기여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행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데 기여하게 된다. 순종의 삶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참 증거이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잠잠히 순종하는 것보다 때로는 더 효과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에 잘 순종하는 것이 사실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드높이고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또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실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정말로 강하면서 또 온유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런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매우 고통스럽고 치욕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때로는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잘 살아간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나 족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뜻을 굳게 해야 한다.

강함과 약함에 대한 세속적인 견해에 동조하는 대신 우리는 다음 두 가지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한다. 나는 끈기를 가지고 친절을 베풀 수 있을 만큼 강한가? 나는 힘들고 고통스럽고 분노를 치밀게 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온유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갈 수 있는 만큼 강한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자신을 내어주는 일이 적절한 일이며 사랑을 베푸는 일이 된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큼 강한가? 그렇게 우리 자신을 내어주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며 고통과 수치가 따를 수도 있다. 또 불공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정하지 않을 때에도 그렇게 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마음대로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우리에게 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방식에 부합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며 또 우리에게 주어진 특정한 상황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지 잘 생각하고 분별해야 한다.

힘이 있을 때 우리는 조급하고 불친절하고 심지어는 무자비하고 공격적이 되기 쉽다.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때 사람들은 그리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을 토대로 볼 때 이런 반응은 정말로 강하고 힘이 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사실 아주 약하고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를 따르며 강하고 담대하기를 바라신다

우리가 정말로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을 여호수아서 1장에서 볼 수 있다.

여호수아 1:6-9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고 이스라엘 역사의 한 분수령이 될 이 중요한 시점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해야 할 것을 강조하셨다. 하나님은 세 번씩이나 그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셨다(6-7절, 9절). 그리고 7절을 보면 형통함이 강하고 담대함과 연결되어 있다. 또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죄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라고 말씀하셨다. 성공하기 위해 여호수아는 강하고 담대해야 하며 하나님의 지시와 방식을 따라야 했다.

따라서 강하고 담대한 데에는 영적인 요소가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힘과 용기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대로 행하기 위해 힘과 용기를 가져야 하며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성공하게 된다.

육체적으로 힘이 있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매우 강해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정말로 강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강해질 수 있도록 우리를 만들지 않으셨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할 때만이 정말로 강해질 수 있다. 바울은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 6:10) 라는 권고의 말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며 끝까지 견딜 수 있는 진정한 힘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올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경험하지 않고는 사랑하고 진리를 따르고 의를 행하는 삶을 살 수 없다. 로마서 7:14-19절을 읽어 보라.

로마서 7:14-19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바울은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행할 수 없는 한 사람의 무력함과 그가 느끼는 자괴감을 묘사하고 있다. 우리도 이런 실패한 듯한 느낌과 패배감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하나님 안에서만 진정한 힘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우리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기로 우리 마음을 정해야 한다. 역대상 16:11절은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라고 권면하고 있다.

하나님을 끊임없이 찾는다면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시 118:14)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주제가 시편 전체를 통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시 28:7);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시 31:4);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시 46:1).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17:5-6절에서 경고하신 말씀에 유념해야 한다.

예레미야 17:5-6
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하나님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 사람을 의지하고 육체의 힘을 믿는 사람에게 경고하셨다.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런 사람은 사막의 난 덤불처럼 시들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보통 체력과 능력과 세속적인 방식을 의지하려 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신자들 중에서도 그런 방식에 영향을 받고 그런 방식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예레미야 17:7-8절에서는 5-6 절과는 매우 상반되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레미야 17:7-8
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사람은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사막에 난 덤불과는 달리 푸른 잎이 무성하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진정한 힘과 진정한 자유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31-32 절에서 예수님을 믿었던 유대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요한복은 8:31-32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유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서 떠나지 않으면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또 진리를 알게 되면 진리가 그들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요한복음 8: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요한복음 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습관적으로 죄를 범하는 사람은 죄의 속박에 묶여 죄의 종이 된 사람이다. 진정한 자유는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리를 따라 살 수 있는 자유이다. 그 자유를 실천할 수 있는 진정한 힘과 능력은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오게 된다.

요한복음 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자유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를 때 누리게 된다. 그렇게 할 때 진리를 따르며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그리고 로마서 7:14-19절에서 보았던 그런 자괴감을 갖지 않게 될 것이며 더 이상 죄의 종이 되지 않게 될 것이다.

로마서 7:24절에서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탄식했다. 그리고 그가 찾은 답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25절)였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자유롭게 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하시며 능력을 부여해주시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런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롭게 된다(롬 8장). 그 자유는 매우 값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자유를 정말로 잘 누리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강해져야 한다.

그런 힘과 능력을 갖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약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바울은 이 사실을 고린도후서 12:9-10절에서 증언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농락하는 사탄의 사자라고 그가 묘사한 자기 육체에 있는 “가시”에 대해 언급했다. 그 가시가 그를 괴롭혔기 때문에 그는 그 가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 번이나 하나님께 간구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고린도후서 12:9-10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바울은 자신이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하게 발휘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약함에 기꺼이 만족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다는 자신의 한계와 무능과 무력함을 깨달았다. 특히 곤경에 처했을 때 더욱 더 그랬다. 자신의 약함을 알게 된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강해졌다. 그래서 그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이 구절은 육체적인 힘과 자신감을 발휘하며 그 힘을 과시하려는 사람들의 방식이 실제로는 우리가 정말로 강해지는 것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의 연약함과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이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자유롭게 드러내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는 자세를 취한다면 우리가 경험하기에 적절하다고 하나님이 여기시는 그 어떤 상황이라도 잘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통해 강해질 것이다.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우리의 육체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풍족함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장에서 우리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연약하고 나약해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상 온유하고 겸손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정말로 강하지 않다면 온유함과 겸손함을 잘 드러낼 수 없게 될 것이다.

진정한 힘에는 온유와 겸손이 수반된다. 정말로 강한 사람은 온유하고 겸손하다. 그리고 정말로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은 정말로 강하다. 그는 언제 어떻게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진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두려움 때문에 그 신념을 포기하는 일이 없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보여주는 완벽한 본보기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말로 강하기를 바라신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에만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의지하는 것을 배운다면 비록 연약해 보인다 할지라도 실제로는 정말로 강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1. 사람들은 힘과 능력을 가진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며 그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견해를 가져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도 강해지기로 마음을 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2. 예수님이 약해 보이셨지만 실제로는 강하셨던 순간들을 떠올려보고 그 예를 들어보라. 예수님의 삶을 통해 정말로 강하다는 것에 대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라.

3.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정말로 강한 사람에게는 어떤 특성들이 나타나는가?

4. 우리는 어떻게 하면 정말로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엔드 노트
1. 십자가와 예수님이 겪으신 고뇌와 고초가 어떤 것이었으며 얼마나 극심한 것이었는지를 좀 더 알고 싶다면 웹페이지 www.godandtruth.com에 올려놓은 설교 AR173-175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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