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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AR145

영적 경험과 영적 능력의 발휘

Preached: 31 Jul 94 ▪ Edited: 5 Mar 09


이 장에서는 영적 능력이 의미 있게 드러난 영적 사례들과 하나님이 사람들과 소통하시는 다양한 방법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꿈이나 환상이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음성 등을 포함해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경험하게 될 때 따를 수 있는 위험들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적 속임수로부터 어떻게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알아보게 될 것이다.

극적인 방식으로 영적 능력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성경에 나타난 그 두 사례를 살펴보기로 하자. 한 예는 신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또 한 예는 구약 성경에서 볼 수 있다.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어서게 했다. 그 기적을 본 사람들은 놀랐고 베드로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런 베드로의 입장이 된다면 누구나 자랑스럽게 느끼며 우쭐해지기 쉽다. 그러나 베드로는 사람들의 각광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은 주님의 능력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과 기적에 쏟아지는 사람들의 관심을 주님께로 돌렸다. 모인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파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힘 있게 증언했다.

사도행전 3:11-16
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이 사건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사도행전 4:4절은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라고 진술하고 있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른 동기를 가지고 효과적으로 그리고 의미 있게 행한 사역 속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능력을 볼 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출한 모세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행한 일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라고 명하셨다. 그리고 그를 통해 많은 기적과 표적을 행하셨다. 그런 기적과 표적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며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모세의 능력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모세를 훈련시켜 준비시키신 후 모세를 통해 일하셨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모세는 나이 사십에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무모하게 애굽 사람을 죽였고 그 때문에 애굽에서 도망을 쳐야 했다. 그리고 그 후 사십 년 동안 하나님이 광야에서 그를 훈련시키셨다. 그 훈련 기간을 마친 후 모세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시는 일에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되었다.

하나님의 능력이 확연하게 드러났던 시기

하나님의 능력은 명백한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고 또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명백한 형태로 드러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거나 그 보다 더 중요한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가시면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능력을 명백한 형태로 드러내시는 때와 시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하시는 것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이다. 그 세 가지 사례를 들어보도록 하자.

그 한 예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압제에서 벗어나 광야에서 생활하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된 시기를 들 수 있다. 그 시기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가는 과정의 중요한 한 단계였다. 그 시기에 하나님은 많은 기적을 행하셨다.

그 다음 시기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사역했던 당시였다. 두 선지자 모두 많은 기적과 표적을 행했다. 그 한 이유는 그 시기가 영적으로 어둡고 메말랐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명백하게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드러내셨다. 하나님은 그들이 추악한 우상 숭배와 바알 숭배에서 떠나길 바라셨다.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면했을 때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가 참 하나님인지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나님의 능력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기적을 행했다.

열왕기상 18:21-24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23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열왕기상 18:36-40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40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새 언약이 시작되는 때가 또 다른 한 시기였다. 그 시기는 매우 중요한데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역을 시작하신 날로부터 초대 교회 시대까지를 말한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가르치시면서 나병 환자들을 고치셨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셨고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하셨고 귀신을 쫓아내셨다. 하나님은 또 사도들이 많은 기적과 표적을 행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영적 능력을 부여해주셨다.

하나님의 능력이 눈부시게 드러나는 경험을 하고자 열망해서는 안 된다. 또 그런 경험을 부정하는 편견을 가져서도 안 된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일하셔야 하는지를 우리가 결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위험이 따른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 삶을 통해 눈부신 방법으로 일하실 수 있다.

우리의 내적 자질들을 키우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올바른 우리의 자세이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이 합당하다고 여기실 때 우리를 통해 일하실 수 있도록 준비된 자세를 취하고 있어야 한다. 즉 우리의 성품과 태도를 개발하고 성경과 하나님과 하나님의 방법을 아는 지식을 더하는 일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켜야 한다. 그렇게 건강하게 성장해나가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이 최선이라 생각하시는 대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일하실 수 있도록 우리를 내어드릴 수 있다.

속임수라는 위험과 긍정적인 내적 자질들의 중요성

눈부신 영적 경험을 추구할 때 우리는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속임수이다.

명백하게 드러나는 영적 능력과 관계가 있는 “영적 은사”를 받게 되면 그 은사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사탄으로부터 온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가? 만일 하나님으로부터 온 은사라면 언제 어떻게 그 은사를 발휘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가? 집중되는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감당할 수 있는가? 영성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능력에 대한 건전하지 못한 생각을 갖게 되면서 보다 더 눈부신 영적 경험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지는 않는가? 눈부신 영적 능력을 경험하는 것 그 자체가 우리를 정말로 강하게 만들어주거나 성숙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우리를 정말로 강하게 만들고 성숙하게 해주는 것은 내적 자질들과 건전한 영성이다.

누가복음 10:17-20절을 읽어 보라.

누가복음 10:17-20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병자들을 고치도록 칠십 인을 내보내셨다. 17절은 제자들이 기뻐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항복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돌아온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라고 말씀하셨다. 칠십 인은 하나님의 권능을 분명히 경험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귀신들이 예수님의 이름 앞에서 제자들에게 항복했다는 사실에 그들이 기뻐하며 흥분하고 있음을 아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핵심은 아니다. 그 경험에 마음을 빼앗기고 몰두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일이며 그 일은 우리의 도덕적, 영적 이슈이다. 그 일에는 참된 회개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하나님과의 교제와 하나님 나라에 속한 형제들과의 교제가 포함된다.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시는 하나님의 승리 앞에서 기뻐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잘 수행하는 착하고 충성된 청지기가 되는 일에 집중하기를 원하신다. 그 일에는 영적인 은사들을 잘 발휘하는 일이 포함된다. 그것이 바로 달란트 비유의 요점이고(마 25:14-30)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우리가 취해야 할 올바른 자세이다.

기적과 방언과 치유와 귀신 축출을 통해서만 영적 능력이 명백하고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명백하고 직접적으로 소통하신다. 꿈이나 환상 같은 방식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이 선지자들에게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실하고 정확하게 말씀하신 사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와 같이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분명하고 직접적이고 영적인 방법으로 사람들과 소통하실 수 있다. 그러나 이 일에는 많은 위험이 따를 수 있다.

하나님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과 소통하시는 이 영역에 대해 이제부터 아주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는 하나님이 확실하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은 덜 극적이고 덜 분명한 방법을 통해 의미 있게 말씀하시는 게 가능할 경우에는 그 방법을 더 선호하신다는 진술에 대해 살펴보게 될 것이다.

고넬료와 베드로에게 일어난 일

사도행전 10장은 고넬료와 베드로가 경험한 일을 기록하고 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었다. 사도행전 10:2절은 그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구제에 힘썼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 당시 그는 성숙한 신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환상 중에 천사를 통해 그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사도행전 10:3-4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천사가 고넬료의 이름을 부르고 그에게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 되었으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사도행전 10:5-6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그 때 베드로 사도 역시 영적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 사건은 사도행전 10:9-20절에 기록되어 있다.

베드로는 지붕 위에서 기도하던 중에 환상을 보게 되었다. 그 환상 속에서 그는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큰 보자기 같은 물체가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 큰 보자기에는 네 발 달린 짐승들과 벌레들과 새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동물들을 잡아먹으라고 말하는 음성을 들었다. 베드로가 그 환상을 곰곰 생각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그가 해야 할 일을 지시하셨다(19-20절).

이 두 사건은 하나님이 고넬료와 베드로 두 사람 모두와 영적인 방식으로 소통하셨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바울의 경험

사도행전 22장에서 바울 사도는 자신이 어떻게 회심을 하게 되었고 또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증언하고 있다. 바울이 정오경에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환한 빛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를 둘러 비췄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을 향해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말하는 음성을 듣고 “주님, 누구십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그 음성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고 대답했다. 그러자 바울은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물었고 주님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고 지시하셨다(6-10절).

17절부터 21절에서 바울은 주님이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명백하게 말씀하셨던 또 한 번의 사건을 진술하고 있다. 바울이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황홀경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 때 주님이 그에게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18절). 그리고 바울이 주님에게 이의를 제기하려 하자 주님은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고 말씀하셨다(21절).


지금까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몇 가지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그 밖에 하나님이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신 경우들도 있다.

하나님이 사람들과 소통하시는 또 한 가지 방법은 바로 꿈이다.

요셉의 꿈

마태복음 1:18-21절에는 하나님이 꿈을 통해 요셉과 소통하신 일이 기록되어 있다. 요셉은 자신과 정혼한 마리아가 결혼도 하기 전에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 때 꿈속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났다.

마태복음 1:20-21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고 싶어 했기 때문에 동방박사들이 떠난 후 다시 하나님의 천사가 꿈속에서 요셉에게 나타났다.

마태복음 2:13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헤롯이 죽은 후 또 다시 하나님의 천사가 꿈을 통해 애굽에 있던 요셉에게 나타나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마 2:20)고 말했다. 이 모든 지시들은 꿈을 통해 명백하게 전달되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동방 박사들도 꿈을 통해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다른 경로를 통해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마 2:12).

이처럼 하나님이 꿈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렇게 하신다고 해서 그것이 곧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기 때문이거나 우리가 영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그런 방식으로 소통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고 성취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바로의 꿈과 느부갓네살의 꿈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바로의 꿈

바로는 하나님이 특별히 기뻐하시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고 수행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꿈을 꾸었다.

창세기 41장에서 바로의 꿈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바로는 꿈속에서 흉하고 파리한 소 일곱 마리가 아름답고 살진 소 일곱 마리를 잡아먹는 장면을 보고 잠에서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데 또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두 번째 꿈에서는 가늘고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통통하게 알이 찬 일곱 이삭을 삼켜버렸다. 그런데 요셉 외에는 그의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바로는 요셉을 불렀고 요셉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16절)라고 대답했다. 그는 꿈에 대한 자신의 해석과 대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바울에게 분명히 알렸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해주었다. 그가 꾼 두 번의 꿈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보여주는 하나의 메시지라고 바로에게 설명했다. 칠년 간 큰 풍년이 있겠고 그 후에는 칠년 간 큰 흉년이 따를 것이므로 애굽은 풍년이 이어지는 칠년 동안 그 후에 이어질 흉년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맥락에서 바로는 요셉을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삼고 왕 다음의 최고위직에 임명했던 것이다.

요셉의 형들은 시기심 때문에 요셉을 팔아넘겼고 요셉은 애굽에서 종이 되었다. 그러나 요셉은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 속에서 더 큰 목적을 보았고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했다. 그는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서 남은 사람들을 지키시고 큰 구원으로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자신을 애굽으로 보내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창 45:5-7). 요셉이 애굽에서 살게 된 것과 바로의 꿈과 요셉의 해석과 그 이후 일어난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과정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

느부갓네살의 꿈

이제 느부갓네살의 꿈을 살펴보기로 하자. 다니엘서 2장에서는 꿈 때문에 심란해하는 느부갓네살을 볼 수 있다. 그의 술사들과 점쟁이들은 그의 꿈들을 해석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큰 신상을 본 느부갓네살의 꿈을 다니엘에게 환상으로 알려주셨고(19절)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그의 꿈을 해석해주었다. 느부갓네살이 그 꿈을 꾸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셨던 것은 결코 아니다. 실제로 그 꿈은 그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더 큰 목적 을 위한 것이었다. 그 꿈과 그 꿈의 해석이라는 전체적인 시나리오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게 될 일을 보여주는 커다란 그림이었다.

꿈속에서 느부갓네살은 머리는 순금이고 가슴과 두 팔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고 종아리는 쇠고 발은 쇠와 진흙으로 된 커다란 신상을 보았다. 그리고 던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돌 하나가 날아와 쇠와 진흙으로 된 신상의 발을 쳐서 신상을 부서뜨렸다. 그 꿈은 나라들이 연이어 흥망을 거듭하겠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세우실 영원한 나라로 끝이 나게 되리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다니엘은 해석했다. 그리고 던진 사람 없이 날아와 그 신상을 쳐서 깨뜨린 돌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다니엘 2:44-45
44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45 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왕께서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은 참되고 이 해석은 확실하니이다 하니

느부갓네살의 꿈은 이 땅의 나라들은 끝이 나겠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할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이 누군가의 꿈을 통해 그에게 말씀하셨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심각하게 경고하시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사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꿈을 살펴보기로 하자.

어느 날 침상에 누워 있던 느부갓네살이 환상을 보았다. 환상 중에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니엘 4:14-16
14 그가 소리 질러 이처럼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자르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을 그 아래에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
15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 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풀 가운데에 두어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데에서 짐승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리라
16 또 그 마음은 변하여 사람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내리라

다니엘은 그 꿈을 하나님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보내는 경고로 해석했다(20-23절). 느부갓네살이 꿈에 본 나무는 느부갓네살을 의미했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힘이 있고 위대했다. 그리고 그는 의기양양해져 있었다. 다니엘은 다음과 같이 그 꿈의 의미와 하나님의 선고를 설명하고 느부갓네살에게 필요한 좋은 조언까지 해주었다.

다니엘 4:25-27
25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26 또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27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의 조언을 따르지 않았고 다니엘의 해석은 나중에 그대로 이루어졌다(28-37절).

오래 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하려는 아비멜렉에게 꿈을 통해 경고하셨다(창 20장). 느부갓네살과 달리 아비멜렉은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들이고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한 과정으로 꿈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몇 가지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종종 선지자들에게 그들이 해야 할 일과 해야 할 말을 지시하시며 매우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선지자들이 예언을 시작하면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라고 소개하는 성경 구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한 말은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었다. 에스겔서를 통해 그 몇 가지 예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에스겔서 1장에서 에스겔은 자신이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다른 것들과 함께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을 보았다(28절)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본 그는 엎드렸고 엎드린 상태에서 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에스겔서 전체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경우에 선지자에게 직접 그리고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그 예로 다음 구절들을 들 수 있다.

에스겔 2:1, 3, 7
1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조상들이 내게 범죄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나니
7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에스겔 3:1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에스겔 3: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지시하신 명령은 아주 분명했다. 파수꾼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그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알려주셨다. 에스겔 4장에서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포위된 예루살렘을 상징하는 징조를 보여주도록 지시하셨다. 에스겔은 그 지시대로 토판을 가져다가 그 위에 예루살렘 성을 그려 넣고 그 토판을 에워쌌다. 하나님은 또 그에게 이스라엘 족속과 유다 족속의 죄악을 그들이 죄를 범한 햇수에 해당하는 날 수대로 처음에는 왼편으로 그 다음에는 오른편으로 누워 감당하라고 지시하셨다. 에스겔은 그대로 순종했다.

하나님의 지시는 에스겔서 5장과 6장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에스겔서 6장의 첫 세 구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에스겔 6:1-3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산을 향하여 그들에게 예언하여
3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께서 산과 언덕과 시내와 골짜기를 향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칼이 너희에게 임하게 하여 너희 산당을 멸하리니

에스겔은 이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했다. 하나님은 12장에서 다시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유배 생활에 관한 징조를 보여주도록 지시하셨다. 6절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내가 너를 세워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게 함이라”고 말씀하셨고 11절에서도 “나는 너희 징조라. 내가 행한 대로 그들도 포로로 사로잡혀 가리라”고 말하도록 지시하셨다.

이제부터 “여호와께서 이르시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이 나오는 다양한 구절들을 예시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 말씀에 이어 긴 내용의 예언이 뒤 따른다. 그 예언들은 선지자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 상황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이 그를 통해 전하고 싶어 하시는 말씀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에스겔 13:3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어리석은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에스겔 13:8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허탄한 것을 말하며 거짓된 것을 보았은즉 내가 너희를 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 13:13, 18, 20
13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분노하여 폭풍을 퍼붓고 내가 진노하여 폭우를 내리고 분노하여 큰 우박덩어리로 무너뜨리리라
18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려고 손목마다 부적을 꿰어 매고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하여 수건을 만드는 여자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가 어찌하여 내 백성의 영혼은 사냥하면서 자기를 위하여는 영혼을 살리려 하느냐
20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새를 사냥하듯 영혼들을 사냥하는 그 부적을 내가 너희 팔에서 떼어 버리고 너희가 새처럼 사냥한 그 영혼들을 놓아 주며

에스겔 14:4, 6
4 그런즉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로 가는 모든 자에게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수효대로 보응하리니
6 그런즉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려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

하나님이 직접 그리고 명백하게 지시하신 또 다른 예로 하나님이 모세에게 성막 짓는 일과 이스라엘의 율법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와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사무엘에게 다윗을 찾아가 기름을 부으라고 지시하셨던 때를 들 수 있다.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 소통의 방식은 구약 성경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신약 성경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그리고 명백하게 소통하실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위험이 따를 수 있다. 가장 큰 위험은 사탄이 우리를 현혹하기 위해 노련하게 사용하는 속임수이다. 바울은 특히 마지막 날에 신자들을 타락시키려는 속이는 영을 경계하라고 경고하고 있다(딤전 4:1)

“음성을 들음”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그에 따르는 위험과 그 위험으로부터 어떻게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지를 이제부터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고 주장하는 음성을 듣게 될 경우 곤란한 지경에 빠질 수 있다. 특히 그 음성이 절대적이고 즉각적인 순종을 요구할 경우 더욱 그렇다. 만일 그 음성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될 위험이 따르고 또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 아닐 경우 현혹될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악한 영들은 매우 그럴듯하게 하나님을 흉내 낼 수 있다. 고무적인 것처럼 보이는 영적 경험을 하면서 음성을 듣는 경우도 있고 색다른 기쁨과 평안을 경험하면서 영적 존재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 또 밝은 빛을 보거나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거나 특별한 사명을 부여 받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이치에 맞고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지시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다양한 사람들과 이슈들에 주목하라는 지시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난 후 자야 할 시간에 자지 말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긴급하게 특정한 이슈들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지시를 받을 수 있다. 이 모든 지시들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어서 경계심을 잃고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사탄이 하는 일일 수 있다.

그 후 점점 더 기괴한 지시들이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믿음이 시험을 당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 지시들을 계속 따르게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은 점점 더 현혹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교묘하게 조종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하면서 사탄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사탄의 핵심 전략이다. 현혹된 사람은 그가 특별한 훈련을 받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는 음성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배우고 사람을 의지하려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따라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거나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자유를 잃게 된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런 속임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필요한 도움을 받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그는 점점 더 심각한 속임수에 빠져들게 될 수 있다.

그 결과 그는 어둠의 권세들과 관계를 맺게 되고 그 속박 아래 놓이게 될 수 있다.

현혹되지 않으려면

그렇다면 이런 속임수에서 어떻게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매우 복합적이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네 가지 핵심을 정리해 볼 수 있다.

  1. 그 “음성”이 정말로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고 그렇게 말할 만한 분명한 근거가 확실하게 드러나기 전까지는 그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결론을 내리거나 그 음성의 지시를 따르는 일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것은 꿈이나 환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지시의 출처가 분명하지 않을 때는 그 지시가 성경을 읽으라거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등과 같은 건전한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 할지라도 쉽게 따르지 말아야 한다. 특정한 시간에 특정 시간 동안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이 적절한 일이라면 그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로 그렇게 하면 된다. 음성을 따라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음성을 따르게 될 경우 실제로 그 음성이 어둠의 권세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그 음성의 출처와 관계를 맺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고 결국 영적 속박에 얽매이게 될 수 있다.
  2. 무엇보다 우리는 순수한 마음과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건전한 지식을 가지고 사탄의 간계를 경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잘못된 욕망이나 부정적인 태도와 같은 오점들이 우리를 약하게 만든다. 순수한 마음을 지킨다면 사탄이 우리 안에서 일할 수 있는 여지가 없게 된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방식을 알고 성경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하나님께 속한 것과 사탄에게 속한 것을 좀 더 잘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방식과 상반되는 사탄의 활동을 좀 더 잘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사탄의 간계와 일하는 방식을 안다면 쉽게 그 먹잇감이 되지 않을 것이다.
  3.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음성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그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는 위협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될 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속이는 영을 경계하라고 경고하셨다. 성경은 사탄에 대해 교활하고 흉계를 가지고 우리를 속이려하는 원수라고 말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영들을 시험해보라고 조언하고 있다. 따라서 영적 경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쉽게 단정하지 않고 조심할 때 사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4.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함께 논의하는 것이 안전하다. 사탄은 우리가 기도 지원이나 교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이나 형제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도록 우리를 격리시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다. 위험이 산재해 있을 때, 특히 속게 될 위험이 현실화되고 있을 때 우리가 혼자 떨어져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과 진리가 드러나고 사탄의 계략이 폭로될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과 상의해야 한다.

힘과 능력에 대한 세속적인 개념과 하나님 안에서 정말로 강한 것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적인 능력에 있어서도 하나님께 속한 능력과 사탄으로부터 온 능력을 분별해야 한다. 영적인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쉽사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영적인 능력과 그 능력이 나타나는 경험을 하고 싶은 욕구가 반드시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 욕구가 우리 삶에 해를 끼칠 수도 있고 특히 그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고 우리에게 다양한 결점과 부정적인 특성들이 있을 때 심각한 영적 속박을 불러올 수도 있다. 사탄이 일하는 방식이나 사람들을 현혹하는 그의 수법을 잘 모른다면 그리고 그 속임수를 경계하며 우리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쉽게 그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사람들을 통해 행하시는 기적과 치유처럼 보다 극적이고 명백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실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험 앞에서 지나치게 감탄하거나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다양한 기적과 치유를 행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정말로 강한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이 장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었던 중요한 요점은 영적인 능력이 보다 명백하게 드러나는 상황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그런 방법으로 일하실 수 있긴 하지만 그런 영적 경험을 바라는 욕망을 품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능력을 정말로 강한 것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또 하나는 삶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 방식이다. 우리가 정말로 바라고 열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열망이 하나님의 마음과 성경이 강조하는 내용들과 일치하는 것인가?

우리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우리의 성품과 우리 삶의 질적 수준을 개발하는 일에 마음을 써야 한다. 그렇게 하면 건전한 지식과 지혜를 갖게 되고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탄의 공격에 쉽게 무너지게 된다. 특히 영적인 경험을 갈망할 때 더욱 그렇다. 사탄이 우리를 속이고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데 성공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역에 심각한 차질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영역에서 매우 조심해야 한다. 사탄의 속임수와 영적 속박에서 아주 자유롭기는 그리 쉽지 않다.

우리 자신을 잘 돌아보자. 영적인 능력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하는 극적이고 눈에 확 드러나는 영적 경험을 바라며 그 일에 마음을 쏟고 있는가? 그렇다면 주님 안에서 잘 성장하고 사탄의 계략에 쉽게 넘어가지 않도록 회개하고 바른 방향으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주님 안에서 정말로 강한 사람이 되는 일에 마음을 쓰자.



1. 성경에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많은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 그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에 대해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었는지 이야기해보라.

2. 영적 능력이 확연히 드러나는 경험을 하고 싶은 욕구에는 위험이 따를 수 있다. 그렇다면 개인의 삶 속에서 극적으로 또는 확연히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대하는 건전한 접근 방식은 무엇인가?

3. 하나님이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시는 다양한 방법들을 보여주는 사례들을 성경에서 찾아보라. 하나님이 한 사람과 직접 소통하실 때 그것은 곧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인가?

4. 하나님이 말씀하신다고 주장하는 음성의 지시를 따를 때 어떤 위험에 처할 수 있는가? 속임수에 현혹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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