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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AR144

힘과 능력: 개념, 문제점, 위험

Preached: 10 Jul 94 ▪ Edited: 8 Jul 08


이 장에서는 힘과 능력에 대한 각기 다른 종류와 개념들에 대해 그리고 그와 관련된 문제점들과 위험들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사람들은 종종 힘과 능력을 부와 지위와 권세와 역량과 결부시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세속적인 힘과 능력은 진정한 힘과 능력이 아니다. 힘과 능력에 대한 이런 세속적인 관점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물론 믿는 사람들까지도 위험한 함정에 빠지고 있다. 그런 힘과 능력을 추구하다 타락하게 되고 결국 자신의 삶을 망쳐버리고 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반면에 또 이런 세속적인 힘과 능력은 추구할 만한 것이 못되지만 영적인 능력은 추구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영적인 능력은 칭찬할만한 것이며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 능력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영적인 능력은 주님의 능력이다. 그 능력은 긍정적이며 건설적이다. 주님을 섬기고 원수를 물리칠 수 있는 힘을 갖게 한다. 그 능력은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 속에서 그리고 바울과 다른 사도들의 삶과 사역을 통해 드러난 힘이다. 그러나 영적인 능력이라고 해서 다 주님의 능력은 아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강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영적인 능력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에 잘못 이끌린다거나 잘못된 영적 경험을 추구하지 않도록 그와 관련된 문제들과 위험들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영적인 능력이 드러날 수는 있다. 그러나 드러난 모든 영적 능력이 다 하나님의 능력은 아닐 수 있다. 어둠의 세력, 다시 말해서 사탄의 영역이 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영적인 능력들 중에는 사탄의 능력에 속한 것들도 있다.

성경은 어둠의 세력이 영적인 능력을 발휘하면서 사람들을 통해 그 능력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 두 가지 예를 살펴보기로 하자.

바로의 요술사들

출애굽기 7:8-12
8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들어서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10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11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12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8절에서 10까지는 모세와 아론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11절과 12절은 애굽의 요술사들을 통해 드러난 사탄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어둠의 세력은 제한된 힘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라. 12절은 아론의 지팡이가 요술사들의 지팡이들을 삼켰다고 진술하고 있다. 또 16-19절을 보면 그 요술사들의 능력이 제한적이었음을 좀 더 확인할 수 있다.

출애굽기 8:16-19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하라 그것이 애굽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
17 그들이 그대로 행할새 아론이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어 땅의 티끌을 치매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가축에게 오르니
18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그같이 행하여 이를 생기게 하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 이가 사람과 가축에게 생긴지라
19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이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을 통해 땅의 티끌을 이로 만들어 애굽 땅을 뒤덮게 하신 일을 볼 수 있다. 바로의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같은 일을 시도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 한 일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었음을 인정했다.

마술사 시몬

어둠의 세력이 인간을 통해 영적인 능력을 드러내고 있는 또 한 사례를 사도행전에 기록된 마술사 시몬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사도행전 8:9-11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오랫동안 시몬은 마술을 행하며 어둠의 세력이 가진 능력을 드러내 왔다. 그는 자칭 자신을 큰 자라 불렀고 사람들도 그를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겼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는 사탄이 그를 통해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마술에 속아 그것을 긍정적이고 경탄할만한 것이라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마술을 하나님의 능력이라 잘못 생각한 그들은 그를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오인했다.

세계 많은 곳에서 어둠의 세력이 드러내는 능력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으로 여기며 두려워하거나 경배하거나 아니면 두려워하면서 경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눈에 보이게 드러나는 영적인 힘과 영적 경험들이 모두 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신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사탄의 속임수에서 우리자신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영적 경험을 통해 현혹하는 속임수

어둠의 세력은 자신들이 드러내는 영적 능력을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신자들이 기이한 영적인 경험들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능력이 아닌 영적 능력 때문에 잘못된 길로 빠져들고 있다. 고린도후서 11:14절에서 바울은 사탄이 자신을 광명의 천사처럼 가장한다고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기분 좋은 영적 경험을 하게 될 때, 특히 평안과 기쁨 같은 감정이 동반될 때 신자들은 종종 그 경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결론을 아주 쉽게 내리곤 한다. 그렇게 쉽게 내린 결론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경험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쉽게 여겨서는 안 된다. 사탄의 속임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그 속임수를 환영한다면 어둠의 세력과 손을 잡는 길로 접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속임수가 점점 더 그 도를 더하게 되고 점점 더 심해지고 결국 우리를 깊은 영적 속박의 노예로 만들 수도 있다.

사도 요한은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신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다(요일 4:1). 바울도 미혹하는 영을 따르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특히 말세에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딤전 4:1).

힘과 능력을 갖고 싶은 욕구

영적인 능력을 구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에 따르는 위험과 문제점들을 알고 올바른 방법으로 그 능력을 구해야 한다.

사도행전 8장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사도행전 8:12-13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빌립의 설교를 듣고 시몬도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믿었다. 그리고 빌립을 따라다니면서 능력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표적이나 기적과 같은 기이한 일을 보고 놀랐으며 그런 일에 그의 마음이 끌렸다.

그 얼마 후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에서 도착했고 두 사람은 믿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도록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했다. 그런데 그 일이 시몬을 더욱 더 놀라게 했다.

사도행전 8:18-23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사도들이 안수한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본 시몬은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런 그의 마음은 분명히 순수하지 못했고 그의 방식도 적절치 못했다. 그는 능력과 권세를 얻고 싶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 봐 주기를 바랐다.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싶었다. 그래서 그 권능을 얻기 위해 사도들에게 실제로 돈을 주려고까지 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그런 일은 우리와 별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멈추어 좀 더 세심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영적인 힘과 능력을 갖고 싶어 하는 신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이런 힘과 이런 능력이 내게 있다면 하나님을 정말로 잘 섬길 수 있고 정말로 효과적이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이런 바람을 가진 신자들은 자신들이 무언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맞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자 하는 열망은 칭찬받을 만한 것이다. 그러나 또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거나 칭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힘과 능력을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안 그런가?

시몬이 복음을 듣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시인하긴 했지만 순수하지 못한 욕망이 그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22절에서 베드로는 시몬에게 그의 악함을 회개하라고 말하며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23절)라고 진단했다. “불의에 매인 바 되었다”는 것은 시몬이 행해온 마술을 언급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과거에 그의 삶 속에서 활동해왔고 여전히 그를 볼모로 잡고 있는 어둠의 세력을 언급한 것일 수도 있다. 또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그의 잘못된 욕망과 큰 자가 되고 싶은 욕망과 인정받고 싶은 욕망들을 언급한 것일 수도 있다. 그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선언하긴 했지만 어둠의 세력과 결탁했던 그의 과거와 복잡하게 얽혀있던 그의 순수하지 못한 욕망과 욕구 때문에 그는 여전히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로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주님이 덧입혀주시는 능력을 사모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마음의 동기를 잘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올바른 동기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포함될 수 있다.

1.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진리를 실천하며 살고자 하는 열망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진리를 사랑하고 그 진리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대로 살고자 하는 열망이 영적 능력을 구하는 사람의 내적 동기가 되어야 한다. 이 동기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싶은 열망의 가장 우선적인 동기가 되어야 한다.

2.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열망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우리에게 능력을 부여해주신다. 우리가 권력이나 권세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쭐해 하면서 방종하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능력을 부여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적 능력을 경험하고 싶은 열망은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열망을 동반해야 한다.

3. 선한 성품과 태도를 개발하고자하는 열망

정말로 강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에는 긍정적인 태도와 선한 성품을 키우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능력을 구하는 마음은, 심지어는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마음까지도 온전한 것이 될 수 없고 심지어 위험할 수도 있다. 선한 성품과 긍정적인 태도를 개발하는 것이 능력을 얻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교만이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같은 온당치 못한 동기가 있다면 사탄이 우리 안에서 일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주게 될 것이다.

4.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는 깨달음

정말로 강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은 또 우리가 연약하고 우리 힘만으로는 진리를 실천하며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깨달음에서 나와야 한다. 주님의 능력을 덧입지 않는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주님께 진실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주님의 능력을 구하는 것이다.

영적인 능력을 경험하고자 하는 열망이 불순한 욕구와 잘못된 동기로 얼룩지게 되면 진정한 힘과 능력을 경험하는데 방해가 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진다. 즉 사탄에게 쉽게 공격을 받게 된다. 그 결과 심한 억압에 사로잡히게 되고 곤경에 빠지게 된다. 특히 마음속에 있는 잘못된 동기들이 잘못된 방식이나 잘못된 깨달음과 짝을 이루게 되면 더욱 더 심각한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점점 악화되는 다음 세 개의 시나리오를 살펴보기로 하자.

시나리오 #1 - 자신을 “비움”

성령이 오셔서 우리 마음을 채우시려면 자신을 “비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뿐 아니라 집단적으로 이런 생각을 실행하려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아무 것도 의지하지 않는 것을 통해 자신을 “비우려” 한다.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음으로 마음을 백지 상태로 만들려 한다. 그리고 성령께서 오셔서 자신을 다스려주시기를 애원한다. 그렇게 하면서 그는 밖에 있던 영이 자신 안으로 들어와서 자신과 자신의 삶을 점거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주게 된다. 이런 방식은 악한 영들이 들어와 그를 소유할 수 있도록 자신을 약하게 만든다. 이런 방식이 잘못된 이유는 성령님은 우리와 우리 삶을 이런 방식으로 지배하기 위해 우리 삶 속에 들어오고 싶어 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반면에 악한 영들은 우리 속에 들어와 우리와 우리의 삶을 지배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시나리오 #2 - 생각을 흐리게 만들고 절제하지 못하게 만들고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격한 감정이나 억누를 수 없는 감정

격한 감정이나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도록 격려하는 분위기가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야단스러운 음악이 연주되고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소리를 지르며 울 수도 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개인적으로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고 또 집단적으로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다.

감정을 영적인 열정이나 순수하게 하나님을 체험하는 경험과 연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열망하는 강한 감정을 경험하고 그 감정을 밖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는 감정이 따르긴 하지만 그런 영적 경험의 감정적인 면은 사탄이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경험하면서 점점 더 영적이 된다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다. 또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을 그 방향으로 점점 더 나아가도록 격려하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과 하나님을 향한 깊은 사랑과 열망을 가지는 것, 이 두 가지를 잘 구분해야 한다. 감정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경험하는 감정이 생각을 흐리게 만들거나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게 만들거나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늘 절제하면서 우리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기를 바라신다. 성령의 열매에 절제가 포함되어 있다(갈 5:22-23). 성령을 정말로 경험했다면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제대로 잘 수행하지 못하거나 또는 전혀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효과적으로 잘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에 어둠의 세력은 우리를 지배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리를 손쉬운 먹잇감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하게 만든다.

어둠의 세력은 성령께서 일하시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한다. 어둠의 세력은 우리를 통제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들의 명령을 따르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가 성령님과 협력하는 길을 선택하기 바라신다. 이 사실은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매우 중요한 원리들 중의 하나이다.

예수님은 주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마 22:37). 바울은 로마서 12:1-2절에서 새롭게 된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우리의 새롭게 된 마음 뿐 아니라 우리의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과 협력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우리가 성경이 가르치는 원리들을 따라 분명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하신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32절에서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라고 말하고 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실 때에도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우리의 제재를 받는다는 뜻이다. 즉 우리가 우리 마음을 제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성령님은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더 이상 제대로 쓸 수 없도록 우리를 지배하기 위해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게 아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하고자 하시는 일에 협력하는 길을 선택함으로 늘 우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제재해야 한다.

시나리오 #3 - 방언과 성령 충만의 관계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방언을 통해 그 증거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하다면 방언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방언과 성령 충만을 연결시키는 것은 신자들로 하여금 방언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강한 열망을 갖게 한다. 그리고 그 열망을 가진 신자들은 방언을 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하려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노력이 어둠의 세력에게 가짜를 제시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신자들은 그 가짜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기꺼이 그 가짜를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신자들은 가짜를 제공한 사탄과 연루하게 되고 결국 그 영향과 속박 아래 사로잡히게 된다.

정말로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그와 관련된 영적 원리들을 이해하고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는 그 사실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자 한다면 그에 따를 수 있는 위험들을 염두에 두고 적절한 방식을 취해야 한다. 영적인 경험을 하게 될 때 그 경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여전히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고 급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다면 그리고 그 경험이 사실상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우리는 결국 영적 속박에 얽매이게 된다. 그러므로 깨어있어야 한다. 특히 평범하지 않은 영적 경험을 하게 될 때 더욱 그래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만을 받아들이고 사탄으로부터 오는 것을 거부하는 분명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어둠의 세력이 우리 안에서 활발하게 일할 때는 도움을 구하기가 힘들 수 있다. 왜냐하면 어둠의 세력이 도움을 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둠의 세력이 우리로 하여금 특별한 경험을 통해 부르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게 만들고 우리가 한 경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일어난 특별한 일이기 때문에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방해를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우리에게 도움이 가장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건강한 교회 생활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도울 수 있는 형제들을 우리에게 공급해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립되어 독단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돕고 서로 돌보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특별한 영적 경험을 하게 될 때는 심각한 영적 어려움에 빠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좀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에게 확인을 요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적이나 치유나 귀신을 내쫓는 일 등과 같이 보다 명백하고 깜짝 놀라게 할 만한 능력이 드러날 때 그 능력에 감탄하면서 마음을 끌리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을 신자들 사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반면에 그런 능력에 의구심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통해 기적이나 치유 같은 일을 더 이상 수행하지 않으시며 신약 시대 이후 그런 일을 행할 수 있는 은사는 더 이상 주지 않으신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책들을 읽어보았지만 그들의 입장을 뒷받침해줄만한 설득력 있는 성경적 지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의 입장은 영적 실체와 잘 맞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진정한 힘과 능력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을 순수하게 경험하는 것이 포함된다.

하나님의 것을 사탄의 것으로 돌리는 것은 중대한 잘못이다. 정말로 드러난 하나님의 능력을 사탄의 능력에 속하는 것으로 이야기한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능력인지 사탄에게 속한 능력인지를 확신할 수 없다면 그 어떤 쪽으로도 설명하려 해서는 안 된다. 다른 모든 분야에서 그렇듯이 이 분야에서도 우리는 전체적이고 균형 잡히고 성경에 근거한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다.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온전한 지혜에 따라 하나님이 적절하다고 여기시는 대로 일하실 수 있는 주권이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을 통해 기적과 치유를 행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그런 특별한 은사들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실 수 있다. 그런 은사들은 고린도전서 12-14장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대로 나누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의 성령이시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통해 더 이상 능력을 행하시지 않으신다고 말하거나 신약시대 이후에는 그런 은사들이 순수하게 사용될 수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주장하려면 그런 입장을 뒷받침할만한 분명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은사를 사용하는 것과 능력이 나타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영적인 은사가 없으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기적을 행하실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영적인 은사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영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은 아니다

하나님이 영적으로 정말 강한 사람을 통해서만 기적을 행하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기적을 행하실 수 있다.

고린도 교회의 신자들을 생각해 보라. 영적 은사라는 면에서 볼 때 그들에게는 부족함이 없었다(고전 1:7)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린도전서 3:1-3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린도 교인들은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영적인 사람들에게 말하듯이 그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은 씹어야 하는 단단한 음식물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그저 마실 수 있는 젖을 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영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세속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고린도전서 12-14장에 나열된 것처럼 방언을 말하고 기적과 치유를 행하는 등의 다양한 영적 은사들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그런 일에 열중하는 경향이 있었고 특히 방언을 말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영적인 일과 관련된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이 그렇게 나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돕고자 했다.

영적으로 강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능력을 대단하게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과는 대조적으로 그 어떤 기적도 행하지 않았지만 성경이 정말로 강한 사람으로 강조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는 하나님을 효과적으로 섬기는 사람들의 사역 속에서 기적과 표적이 많이 나타났던 신약 시대였다.

그 사람은 세례 요한이었다. 그를 묘사하고 있는 세 개의 성경 구절을 살펴보기로 하자.

누가복음 1: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누가복음 1: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요한복음 10:4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세례 요한은 영적으로 강한 사람이었고 어머니의 태에 있을 때부터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지만 그 어떤 기적도 행하지 않았다. 이 사실은 하나님이 정말로 강한 사람을 통해 눈에 확 드러나는 기적이나 치유를 행하지 않으실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다음 몇 가지 질문들에 스스로 답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옳은 일에 집중하고 있는가? 외적으로 드러나는 일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진리와 건전한 지식과 선한 성품을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과 연합하고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는 일에 더 마음을 쓰고 있는가? 어느 쪽을 더 중시하고 있는가?

옳은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케 해주시기를 구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 충성된 삶을 살고자 할 때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알게 되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케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게 된다. 때때로 성령으로 우리를 새롭게 해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특별한 경우에 덧입게 되는 능력

성령으로 충만할 때에도 감당하기 벅차거나 매우 중요한 경우를 위해 특별히 성령의 능력을 더해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사도행전 4:8절에 나타난 예를 보라. 오순절에 베드로는 성령으로 충만해 있었고 그의 사역 속에서는 능력이 나타나고 있었다(행 2, 3장). 그를 통해 기적과 표적이 나타났고 그의 복음 전파에는 힘이 있었다. 한번은 그가 산헤드린이라는 유대인들의 평의회 앞에 서서 심문을 받게 되었다.

사도행전 4:7-8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베드로는 이미 성령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을 향해 말하고 있다는 진술을 볼 수 있다. 그는 그 상황을 대면하기 위해 새롭게 충만해졌고 특별히 성령의 능력을 덧입었다. 세속적이고 종교적인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로 구성된 평의회 앞에서 담대하고 정확하고 효과적인 증언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그런 상황이었다.

사도행전 4: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베드로는 어부였고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덧입게 된 그는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로 구성된 평의회 앞에서 흔히 볼 수 없을 만큼의 아주 효과적인 증언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문제들과 관련지어 생각해보면 도움이 될 성경 구절이 하나 있다. 산상 수훈의 마지막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마태복음 7:22-23절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7:22-23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심판 날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자신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했고 귀신을 쫓나냈고 기적을 행했다고 말하겠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명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언급하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그리 분명치 않다. 그러나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 아마도 그들은 한 때 참 신자였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 불렀고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귀신을 쫓아냈다. 그러나 타락하게 되었고 타락하게 된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그런 영적 은사들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들이 행한 일은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었다. 하나님이 그들이 한 사역과 봉사를 인정해주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들까지도 거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타락한 이후에도 그들이 지속적으로 드러냈던 영적 은사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사탄으로부터 온 가짜인지는 이 구절에서 분명히 알 수 없다.
  • 그들은 자신들을 신자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참 신자가 아니었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 불렀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행했던 영적 은사들은 사탄으로부터 온 가짜였고 따라서 주님은 그들과 그들이 한 일을 거부하실 것이다.

이 구절을 말씀하시기 전에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마태복음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예수님은 그들의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와 나쁜 열매를 맺는 나쁜 나무를 들어 설명하셨다(16-20절). 그런 다음 예수님을 보고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셨다(21절). 이 맥락 속에서 예수님은 심판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라고 한 구절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7:22-23절은 참 신자들이 아니라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 언급하신 말씀이었을 것이다.

이제 이 구절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세 가지 사실에 주목해보자.

1. 좋은 일인 것처럼 보인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옳은 것처럼 보이고 긍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말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마태복음 7:22절이 기록하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 불렀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했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이 한 일은 좋은 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에 부합하는 긍정적인 내적 실체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한 일은 실제로 좋은 일이 될 수 없었다.

2. 주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 구절은 자신들이 주님을 섬긴다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들이 주님을 섬긴다고 생각했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로 그들이 주님을 섬긴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또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일을 그들이 했다는 것을 뜻하지도 않는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인 것처럼 가장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려는 사기꾼들도 있을 수 있다. 또 주님을 섬기고 있다고 자신은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사탄에게 이용당하면서 속임수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일은 신자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사탄이 우리 삶을 조종하면서 이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 옳은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면 실제로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3. 우리의 삶과 성품이 우리 섬김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한다

사역과 섬김의 질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예언을 행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일 수 있지만 그런 일을 행하는 우리의 마음이 올바르지 않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23절)고 말씀하실 것이다. 불법을 행하는 사람은 마음속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음을 보여준다. 마음속에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 마음으로 행하는 일도 좋은 열매가 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다. 우리의 사역과 섬김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과 성품과 내적실체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열매를 맺고 정복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해야 한다. 그런 삶은 내적 사람의 긍정적인 자질들과 진리를 아는 지식과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하는 생활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 신자들의 선한 성품과 긍정적인 자질들은 진리를 아는 지식과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와 더불어 신자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며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며 살아갈 때 선한 열매를 지속적으로 맺을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이 바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신 요한복음 15:5절에서 주님이 가르치신 내용의 진수이다.



1. 그리스도인이 영적 능력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인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또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2. 사탄의 능력이 영적 능력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인간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어둠의 세력을 보여주는 사례들을 성경에서 찾아보라.

3. 어둠의 세력에 속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는 고린도후서 11:14절, 디모데전서 4:1절, 요한일서 4:1절의 교훈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해 보라. 어떻게 하면 속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가?

4. 영적 능력을 힘입고 경험하고 싶은 열망에 합당한 긍정적인 동기는 무엇인가?

5. 영적 능력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된 동기와 잘못된 방법을 통해 영적인 힘을 추구하고 영적 능력을 경험하려 할 때 따르는 위험들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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